'취미가 뭐예요?'가 불편한 당신에게
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는 건 결함이 아닙니다.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뿐입니다.
Minsoo · Founder & CEO
Mind Guide읽기 8 분
“취미가 뭐예요?”
가벼운 질문이지만, 누군가에게는 매번 말문이 막히는 순간입니다. 딱히 떠오르는 게 없거나, 있어도 “이걸 취미라고 해도 되나” 싶어 얼버무리게 됩니다. 이 글은 그 불편함이 어디서 오는지, 그리고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는 상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.
01. 그 질문이 왜 불편할까
“취미가 뭐예요?“는 사실 꽤 어려운 질문입니다. 짧은 시간에 나를 하나의 취향으로 요약해서, 상대가 알아들을 만한 이름표로 내놓아야 하기 때문입니다.
뚜렷한 취미가 있는 사람에게는 쉬운 자기소개지만,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준비 못 한 시험처럼 느껴집니다. 그래서 불편함의 정체는 대개 “나는 취향이 없는 사람”이 아닙니다. 취향을 정답처럼 요구하는 질문의 형식이 문제인 거죠. 좋아하는 게 없다기보다, 지금 당장 한 단어로 말하기가 어려울 뿐입니다.
02. 좋아하는 걸 모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
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는 데는 대체로 이유가 있습니다.
하나는 여유의 문제입니다. 오래 바쁘고 스트레스가 크면, 무언가를 새로 좋아할 마음의 공간 자체가 줄어듭니다. 생존 모드에 있을 때 취향은 사치처럼 밀려납니다.
다른 하나는 기준의 문제입니다. 지금까지의 선택을 내 마음이 아니라 남의 기준으로 해왔다면, 그러니까 주변의 인정이나 유행, 남들이 하니까 따라가는 식이었다면, 정작 내가 뭘 좋아하는지 확인할 기회가 없었을 수 있습니다. 좋아하는 걸 모른다기보다 물어본 적이 없었던 쪽에 가깝습니다.
03. ’못 찾은 것’과 ’사라진 것’은 다르다
여기서 중요하게 구분할 게 하나 있습니다. 아직 좋아하는 걸 못 찾은 상태와, 예전에 좋아하던 것마저 즐겁지 않은 상태는 다릅니다.
후자를 무쾌감(anhedonia)이라고 부릅니다. 흥미나 즐거움을 느끼는 능력 자체가 무뎌진 상태로, 우울증의 핵심 증상 중 하나입니다.1 좋아하는 걸 탐색으로 찾을 수 있는 것과 달리, 무쾌감은 노력으로 쉽게 밀어붙일 수 있는 게 아닙니다.
기준은 변화와 지속입니다. 원래 좋아하던 것마저 재미없어진 변화가 2주 이상 이어지고 그 때문에 일상이 눈에 띄게 힘들어졌다면, 혼자 애쓰기보다 상담이나 진료를 고려할 때입니다. 어디로 가야 할지는 심리상담센터와 정신과의 차이에서 이어서 다룹니다.
04. 취향은 발견이 아니라 실험이다
무쾌감이 아니라 단지 아직 못 찾은 상태라면, 취향은 머리로 정답을 고르는 문제가 아닙니다. 오히려 작게 해보며 관찰하는 실험에 더 가깝습니다.
잘하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. 오히려 ’잘해야 한다’는 부담이 취향을 가립니다. 작은 걸 하나 해보고, 하고 난 뒤의 기분만 가볍게 남겨 보세요. 시간이 잘 갔는지, 끝나고 조금이라도 개운했는지. 그런 작은 신호가 쌓이면 방향이 보입니다.
’좋아함’은 완성된 명사라기보다 해보면서 알게 되는 동사입니다. 좋아하는 걸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니라, 좋아하는 일을 해보는 중이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.
05. 나를 아는 건 목적지가 아니라 방향
내가 뭘 좋아하는지 아는 일은 한 번 답을 내면 끝나는 시험이 아닙니다. 사람은 계속 변하고, 취향도 함께 갱신됩니다. 그러니 지금 답이 없어도 괜찮습니다. 필요한 건 완성된 자기소개가 아니라, 자신을 조금씩 관찰하는 습관입니다.
우리가 오리의 꿈에서 ’판정’보다 ’자기 관찰’과 ’회복’에 무게를 두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. 나를 아는 건 도달해야 할 목적지가 아닙니다. 계속 확인하며 나아가는 방향에 더 가깝습니다.
References
다음 글에서는 도움이 필요할 때 심리상담센터와 정신과 중 어디로 가야 하는지, 그 차이를 정리합니다.
소식은 인스타그램(@symple.kr)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.
Footnotes
-
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(2013).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(5th ed., DSM-5). 주요우울삽화의 핵심 증상 중 하나로 흥미·즐거움의 상실(anhedonia)을 규정. ↩
자주 묻는 질문
- '취미가 뭐예요?'라는 질문이 불편한 건 이상한가요?
-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. 그 질문은 짧은 시간에 나를 하나의 취향으로 요약해 답하기를 요구합니다. 뚜렷한 취미가 없거나, 있어도 설명하기 애매한 사람에게는 자기소개 시험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. 취향이 없어서라기보다 질문의 형식이 부담스러워서 불편한 경우가 많습니다.
- 좋아하는 게 하나도 없는데 문제가 있는 걸까요?
- 대부분은 문제라기보다 상태입니다. 오래 바쁘거나 스트레스가 크면 좋아할 여유 자체가 줄어듭니다. 또 지금까지의 선택을 내 기준이 아니라 남의 기준(주변의 인정, 유행)으로 해왔다면, 정작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알 기회가 없었을 수 있습니다. 이런 건 탐색으로 풀어갈 수 있습니다.
- 무쾌감(anhedonia)은 무엇인가요? 언제 도움을 받아야 하나요?
- 무쾌감은 예전에 즐겁던 일에서도 흥미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로, 우울증의 핵심 증상 중 하나입니다. 단순히 취향을 못 찾은 것과 달리, '원래 좋아하던 것마저 재미없어진' 변화가 2주 이상 이어지고 일상에 지장이 있다면 상담이나 진료를 고려하는 것이 좋습니다.
- 취향을 어떻게 찾을 수 있나요?
- 머리로 정답을 고르기보다, 작게 여러 가지를 해보며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관찰하는 편이 효과적입니다. 잘하려 하지 말고, 하고 난 뒤의 기분만 가볍게 기록해 보세요. '좋아함'은 완성된 명사라기보다 해보면서 알게 되는 동사입니다.